관리 메뉴

Kien's story

안중근 의사 본문

All My Concern

안중근 의사

imkien 2016. 8. 17. 14:29

요즘 안중근 의사에 대한 어떤 분의 발언 때문에 갑자기 안중근 의사께서 조명을 받고 계신 것 같아 뭔가 씁쓸한 느낌이 든다. 좋은 의미로 각광을 받으시고 조명을 받으셔야 하는 분인데, 나라를 위해 그렇게 애쓰다 돌아가신 분들을 이 나라는 정말 제대로 대우도 해주지 못하고 보호해주지도 못하는 것 같다. 여튼 이참에 안중근 의사에 관해 살짝 포스팅을 해보고자 한다. 그분의 약력을 다 소개할 필요도 없고 그 약력은 그냥 검색하면 다 나올 테니까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연해주 일대에서 의병을 이끌던 전 간도 관리사 이범윤과 함께 항일전을 전개하던 안중근 의사는 한국 침략에 주동 인물인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에서 처단 할 계획을 세우셨다. 그리고 1909년 10월 26일 마침내 안중근 의사께서는 의거를 거행 하얼빈에서 민족의 울분을 대신 터트리시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하셨고 러시아어로 "꼬레아 우레!"(대한 독립만세)를 세번 외치고 러시아 군인들에게 체포되셨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의 결과 일본 내에서는 한국의 강제 병합을 요구하는 강경론이 들끓게 되었고 일본 정부는 이같은 분위기를 기회 삼아 이미 진행중이던 한국 병합 방침을 당행하게 된다. 안중근 의사께서는 뤼순(여순)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셨는데 그 감옥에서도 바른 몸가짐과 생활로 간수까지 감명받게 하였고 이로 인해 안중근 의사께서 사형 판결이 내려졌을 때 뤼순 감옥의 간수장은 안중근 의사가 지필 중이시던 <동양평화론>의 집필이 끝날때 까지만 사형을 미뤄주면 안되겠냐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중근 의사께서는 1910년 3월 6일 순국하셨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직도 우린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했고 가묘만 있을 뿐이다. 안중근 의사께서는 <동양 평화론>을 집필 하실만큼 역사적 혜안과 안목도 뛰어나시고 많은 유묵을 남기기도 하신 지식인이시기도 했다. 그런 분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말하는 사람들이나 국가가 어려울때 모든 것을 걸고 싸우신 분들을 희화시키거나 모욕하는 것은 정말 한국인으로써 해서는 안되는 일 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땅 위에서 편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더 그래야 한다. 사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이거나 관심이있는 사람이라면 친일의 역사가 얼마나 흐지 부지 넘어가서 아직도 이 한국에 살아 있는지 알 수 밖에 없다. 그런 세상이니 어떻게 독립을 위해 고생하신 독립운동가 분들이 제대로 평가를 받고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정말이지 한심하고 안타깝다.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 다시 그 기회를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린 직접 눈으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안타깝고 안타깝다. 안타까운 마음에 안중근 의사를 핑계로 글을 적어 보았다. 마지막으로 안중근 의사의 시를 적어 그분의 심정을 느껴 보며 포스팅을 마치려 한다.


장부가 세상에 처한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만들 것인가

영웅이 때를 만들도다

천하를 웅혼하게 바라보라

과연 언제 업을 이룰꼬

동풍은 점점 차가워지는데

장사의 뜻은 점점 더 뜨거워진다

분개해 한번 떠남에 반드시 그 목적을 이루리로다.

<안중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