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Kien's story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 사망하다. 본문

Store of Knowledge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 사망하다.

imkien 2016. 11. 26. 23:03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어쩌면 더 많은 죽음을 접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몇년 사이 유명인사들이 꽤 많이 사망했는데, 쿠바의 전 국가 평의회 의장이 사망했습니다.


현 라울 카스트로 대통령이 방송 연설을 통해서 피델의 사망을 발표했는데, "밤 10시 29분에 쿠바 혁명의 최고 사령관인 카스트로 루즈가 사망했습니다" 라고 발표했더군요.


카스트로는 수년간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고, 오랜시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이미 죽은 것 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피델의 사인은 정확히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혁명가의 얼굴에 드리워진 세월의 흔적>



이 쿠바의 혁명가는 1926년 8월 18일에  Biran의 작은 동쪽 마을에서 피델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루즈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사탕 수수 농부였고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첫 부인의 하녀로써 일했던 사람이었죠.  


카스트로는 고등학교를 통해 로마 카톨릭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운동실력도 뛰어났던 그는 하바나 대학의 법률학교에 입학하였고 그곳에서 정치에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카스트로가 쿠바 지도자들을 전복시키고 하원을 장악하려던 몇번의 시도가 있었고 일련의 공격에 이어 그는 1959년 쿠바의 독재자 Fulgenico Batista의 권력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습니다.


카스트로의 좌측 행보로 인해 카스트로는 전세계 좌파들에게 존경을 받았지만, 반면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에게는 눈에 가시처럼 여겨졌습니다. 

<연설을 즐겻던 피델>


카스트로는 미국과 거리를 두면서, 기업들의 국유화를 빠르게 진행했습니다. 그로인해 미국은 공식적으로 1961년 1월 쿠바와의 모든 외교 관계를 단절하게 되었죠.


AP 통신은 카스트로의 사망을 기다렸던 망명자들은 그의 정치적 반대자들을 투옥하고 시민의 자유를 억압했으면 나라의 경제를 파탄시킨 장본인이라고 말했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었습니다.(하지만 그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는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발언이고 미국에 망명한 자들의 발언이라 이것으로 그를 판단하긴 어렵습니다)


1998년 교황 바오로 2세가 처음으로 교황자격으로 쿠바를 방문하고 쿠바의 고립정책은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0년후인 베네딕토 16세는 한걸음 더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2003년 카스트로는 또 다른 5년 임기의 의장으로 확정되었고 그리고 나서 카스트로는 독립 언론 및 반체제 인사 와 활동가들에 대한 주요단속과 베네수엘라와의 관계 강화를 이끌어내는 몇몇 정책들을 시행했습니다.


베네수엘라에 보건전문가를 보내주고 석유를 받는 딜을 성사시키기도 했죠.(유명한 사실이지만 쿠바의 의료수준은 꽤 높은 편이고 무엇보다 의료비가 엄청 저렴하며, 외국인들조차도 저렴한 가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그의 복지정책의 성과이기도 하죠)


<체게바라에 꿀리지 않은 피델 간지>



2006년까지 카스트로는 형제인 라울에게 쿠바에 대한 임시통제권을 넘겨주는 작업을 했고 대장수슬을 받았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권력을 내려놓은 것은 47년만의 일이었죠.


2008년 국회에서 피델을 쿠바의 지도자로써 재확인할 준비를 했는데, 그는 편지를 통해 이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47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그리고 그 시점부터 그는 거의 2년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가 거부의사를 표했던 그 편지는 쿠바의 공산당 웹사이트인 Granma에 게시되어 있으면 카스트로는 그 편지에서 "나는 여러분께 작별 인사를 하지 않을 겁니다. 내 유일한 소망은 군인으로써 싸우는 것 입니다" 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정말 군인으로써의 명예가 있었는지 그 오랜 시간의 권력 장악기간동안 자신에 대한 우상화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북한의 누군가와 다르게 부자 세습도 하지 않았죠, 동생인 라울은 혁명의 동반자였지 그의 부하가 아니었던 점에서 권력 세습이라 볼 순 없습니다.)



카스트로는 2010년 몇 차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2011년 쿠바 공산당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고 라울 카스트로는 미국과의 외교를 재개하려는 노력을 했고, 오바마의 행정부와 협상 노력을 꾸준히 한 결과 2014년 미국과의 동맹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인 라울 역시 차기 의장 선거에는 불출마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남은 임기 동안 외교 및 경제 정책에 전력하겠다고 했는데, 아마도 같은 공산국가인 중국의 개방 정책을 따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점진적 개혁을 천명한 라울 카스트로>



이제 쿠바는 수많은 변화를 맞이 해야 할 것 입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가 과연 피델이 원했던 공산당이 주도하는, 그가 혁명의 기치로 내걸었던 것과 부합하는 변화일지는  지켜봐야겠죠. 그리고 역사가 그의 혁명을 그리고 그의 47년간의 통치를 어떻게 기록할지도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라도 권력의 정점에 오랜기간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 시대에 바른 흐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또한 권력의 정점에 있다보면, 주변에서 그를 부추기는 사람들이 많고 이는 아무리 심지가 곧은 인물이라 해도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닐테니까요. 그래서 수많은 독재자들의 말로가 좋지 않았던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면에서 카스트로는 검소한 부분 부터 권력 세습을 하지 않은 점까지 긍정적으로 표현할 부분이 꽤 많았고 평안하게 눈을 감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죽은 후 그가 체게바라를 만나게 된다면, 그는 무슨 말을 할까요?  그리고 체게바라는? 세계 근현대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 이렇게 또 사라지는 것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독재자의 딸 때문에 오늘도 집회를 하고 계실 수많은 시민분들을 생각하니 또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If this post helps you, Plz Push Heart:D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