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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en's story

탈인본주의 & 해체주의건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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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인본주의 & 해체주의건축

imkien 2016. 8. 18. 02:06

해체주의 건축에 대한 제3의 시각은 주로 건축가들 특히 아이젠만과 츄미등이 제시하는데, 한 마디로 탈인본주의 혹은 탈기능주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해체주의 건축에 대한 제3의 시각에 대한 논의는 인본주의와 기능주의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기능주의는 기능,형태, 그리고 의미간에 하나의 궁극적인 일ㄷ일의 상응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발생시킨다. 18세기 이후 건축의 큰 두 흐름을 형성한 구성주의적 전통과 상징주의적 전통이 오랫동안 존속하여 많은 이들이 되풀이 해서 '건축의 언어'를 탐색한 것도 그러한 기능주의 관념이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구성주의적 전통은 기능에서 건축의 자율적 논리, 즉 건조의 원리를 보았고 상징주의적 전통은 기능을 의미의 근원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의 개념에 대한 바깥으로 보기에 상이한 접근방식들 뒤에는 하나의 동일한 의심 할 수 없는 믿음 즉 건축에 인간이 미끌어지거나 비틀어지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실재로서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믿음이 숨겨져 있다. 


아그레스트가 제시하고 있는바에 따르면 기능주의 관념은 건축의 의미를 주체와 객체간의 관계성의 산물로 간주하는 전통적인 비평에서 비롯되었다. 아이젠만 역시 기능주의 관념은 인간과 자신의 대상 세계간의 관계에 대한 이상주의적 견해에 의해 떠 받쳐진다고 주장했다. 건축가를 형태조작가 혹은 형태 주물가로 보는 이상주의적 견해를 제공해 줌으로써 기능주의는 전통적은 건축 담론의 모멘트로 작용해 온 것이다.


그러나 아이젠만에 따르면 산업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대중 거주자들을 수용해야 하는 문제와 더불어 더 복잡한 기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문화적 상황에서 기능주의는 형태와 기능간의 관련성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고 나아가 인과적인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는 까닭에 상황적으로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레비치, 오스만 그리고 두스부르흐 등과 같은 20세기 전위가들이 자신 이외는 어떤 것과도 관련성을 갖지 않는 수눈사인 즉 절대적으로 자율적인 언어 재료를 발견했다고 한결 같이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러시아 형식주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데 러시아 형식주의가 시도했던 것은 예술작품을 그것이 될 수 있으면 명백하게 예술적이도록 해주는 어떠한 특별한 기술들에 의해 정의되는 것으로서 그러한 테크닉들은 예술가가 아니라 작품 그자체에서 발견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러시아 형식주의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시 그자체나 시인이 아니라 시적인 질 이었다.  


이에 제콥슨은 "낱말이 이름을 부여받은 어떤 대상물의 단순한 표상이나 혹은 감성의 표출이 아니라 낱말로 느껴질 때 말들과 그 구성방식 그것들의 의미 그것들의 외재적,내재적인 형식이 무감하게 현실을 지시하는 대신 자신들 스스로의 무게와 가치를 획들 할 떄 시적인 질이 현존한다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의미에 대해 가장 체계적이고 비기능주의적인 견해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소쉬르이다 소쉬르는 1906년과1911년 사이에 걸친 강의에서 언어 사인의 임의성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는데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서구 사고의 경향은 언어와 실재간의 결합관계를 근본적으로 신비한 어떤 본질을 상호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라고 했다. 그러나 소쉬르의 견해에 따르면 낱말들은 사물들 그 자체를 지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차등 그물망으로 생각되는 전체적인 언어 체계내에서 의미를 지닌다.


아이젠만은 이러한 새로운 문화현상들을 물질세계의 인공물에 대한 하나의 변화된 정식 태도 혹은 서구의식의 중대한 변화로 간주하고 그것을 인본주으에서 모더니즘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특정지었다. 


그는 그러한 새로운 문화적인 태도가 수학 음악 회화 문화 영화 그리고 사진과 같은 질적으로 다른 분야에서 동일하게 발생 하는 것을 관찰했는데 그것은 비대상물적인 추상,무조, 비시간성 그리고 비이야기 구조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모더니즘의 양식적 표시일 뿐이고 본질적인 성질은 자신의 세계의 중심으로부터 인간의 전위 있는 것이다. 즉 다시말해 모더니즘의 본질은 인간은 더 이상 무엇을 낳게 하는 작용자가 아니라는 새로운 전망에 있다는 것이다.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새로운 정신 형태에서는 사인이 의미뿐만이 아니라 인간과도 관련성을 갖지 않고 형태는 내용물이 없는 일련의 단편들로 파악된다. 그러나 아이젠만의 주장에 의하면 건축은 기능이라고 하는 원칙에 대한 집착때문에 그러한 변화가 지니는 본질에 참여하지도 또한 이해하지도 못하였다. 


그때문에 모더니즘에 진입하기 위해서 건축이 해야 할 작업은 주체와 객체간의 미끄러지지 않은 투명한 관계를 전제로 삼는 기능주의 관념의 극복에 있다고 봤다. 따라서 탈기능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관념은 형태 부여자로서의 건축가라고 하는 개념 그리고 일종의 규범적으로 구성되는 형태 부여로서의 건축등의 개념을 지지하고 있는 기능주의 현실관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일상과 전통적인 건축가치나 질서체계를 의심하는 덕에 김헌의 건축은 상당부분 탈기능주의적 탈인본주의적 특성을 가지고있다. 특히 세렌디피티가 그러한데 가장면적을 필요로하는 공간인 침실을 최소화한 반면 거실이나 지하실등을 극대화 하였다. 인본주의에 기초한 기능주의의 사물관을 폐기하기 위해 해체주의 건축가와 건축이론가들이 취하는 전략은 건축의 지향성을 주체와 객체간의 관계로부터 객체들간의 상호작용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이것은 건축의 의미가 주체와 객체간의 투명한 관계성으로부터 발현되고 또한 확장된다고 보는 기능주의적 관념을 거부하면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직선적이면서도 급진적인 방법중 하나다. 해체주의 건축가나 이론가들이 그러한 전략을 위해 확보하고 있는이론적 모형은 데리다의 TEXT의 개념이다.


특히 의미문제에 관해 데리다는 책과 텍스트를 구분하고 있는데 책이란 용어는 우리가 항상 이해할 수 있고 또한 이해해야 하는 방식으로 이해되는 글을 의미하며 그것은 자연 안에서 혹은 자연 버빅안에서 창조될 수 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영원한 현존 안에서 생각되는 것이다. 


텍스트라는 용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고 다만 다른 텍스트들에 대항여 논평만 하는 나쁜 글을 의미하고 있다 책이 어떤 자연적인 총제와 관련성을 확보함으로써 하나의 주제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글이라고 하면 텍스트는 쓰는 행위 그 자체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것도 목표로 하지 안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책에는 의미의 발현에서 기표와 기의간에 투명성이 있는 반면 텍스트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기표들 뿐 인 것이다.


해체주의 건축가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어떠한 의미와 주체자도 현존하지 못하도록 그것들을 해체시키고 기의만 끊없이 자유롭게 작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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