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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en'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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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eth Haring : 길위의 예술가

imkien 2016. 8. 9. 16:34




"내가 그림을 그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난 내가 어떤것도 보고 듣거나 읽지 않았다고 가정한다......그리고 창조한다.

내가 무엇인가를 만들땐 항상 그것을 보러올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무엇인가를 볼땐 항상 그것을 만든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그 어떤것도 중요하지 않다......그래서, 모든것이 중요하다."
<Keith haring in New York>
 

 
우리가 익히 아는 것 처럼 팝아트 하면 딱 떠오르는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앤디워홀일것이다
뭐 선구자적인 면이 있기에~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지만
난 개인적으로 키스 해링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그의 재기발랄함과 유머스러움이 좋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살다간
키스 해링(1958-1990)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난 키스는
미술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한 이후
1978년부터 뉴욕의 벽이나 혹은 지하철 광고판에 Graffiti를 시작한다.
그의 작품은 만화적인 인물들이나 이슈적가 되고 있던 인물들의 모습을 차용
성적인 에너지를 드러내고 있을 뿐 만아니라
핵전쟁 혹은 에이즈 같은 사회전반에 걸친 이슈들이
그의 에너지틱한 작품들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의 주제는
성,생명,에너지, 태동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이러한 주제들을 나타내기 위해
기어다니는 아기의 모습(솔직히 아기같진 않지만 귀엽고 단순한것은 사실이다)
피라미드,Tv,뛰어다니는 인물 등을 사용했다.
해링은 대중문화로부터 차용한 아이콘이나 기호, 상징 등을 가지고
그만의 반추상적인 작품세계를 표현했다.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어두운 부분들마저 밝은 모습으로 채색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더러는 그가 외설적이고 경박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편에선 그의 경쾌하고 솔직함이 좋다는 소리도 존재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타고난 낙천성때문이 아닐까?
늘 웃는 모습을 보여준 그는
1990년 에이즈로 죽기전까지(이때문에 미술계가 발칵뒤집혔다.)
수많은 작품들을 뿜어냈다.
아마도 그것은 작품에대한 그의 열정과 함께
그의 남은 생명력을 다 쏟아 부은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은 흔해져버린
낙서화(Graffiti)들을 주류 예술의 한 부분으로 승화시킨 것도
아마도 그의 생명력과 유머가 밑바탕이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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