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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사실로 여겨지는 역사적 거짓들

imkien 2017. 9. 18. 16:14

나치의 프로파간다 선전을 주동하고 담당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거짓말을 큰소리고 지속적으로 반복하면 결국 사람들을 그것을 믿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고 하죠. 역사에는 이러한 괴벨스의 말이 진실이란 예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모든 이야기가 사실은 아닐 것이고 모든 사건이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습니다. 어떤면에서 일부는 조작되는 반면 다른 것들이 널리 알려져 결국 거짓말이 사실이 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오늘은 지금도 여전히 사실이라고 믿어지고 있는 몇몇 역사적인 허구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아마 이 포스팅을 읽고 있는 분들 역시 아 이게 아니었어? 하는 사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음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 처녀들의 피로 목욕한 엘리자베스 바토리 ?


엘리자베스 바토리 백작 부인은 헝가리의 귀족입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악명 높은 귀족 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 인물이기도 하지요. 실제 바토리는 여러 젊은 여성을 고문하고 또 살해한 혐의로 기소를 당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를 피의 백작(Bloody Countess) 혹은 뱀파이어 백작이라고 부르게 되었죠.

일종에 흡혈귀의 원형으로써 알려져 있습니다. 문화 속에서 그녀는 처녀, 처녀인 하녀, 그리고 귀족의 여성 자제 등을 죽인 다음 그 피로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사용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세기부터 시작된 이 이야기는 수많은 대중 문화 속에서 피의 목욕에 대한 묘사로 있어왔죠. 아마도 그녀의 잔혹함이 일종의 개성으로써 인정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만, 실제 이 주장을 입증 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토리가 실제  악랄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바토리는 실제로도 살인과 고문을 했고 (식인을 했다는 의심도) 그에 대한 증거가 있으며 재판 기간 동안에도 많은 이들이 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바토리가 피의 목욕을 했다는 증언은 없었습니다. 바토리가 피의 목욕을 했다는 이야기는 바토리가 죽은 이후 몇년 뒤에 시작되기 시작했던 것이죠. (국내 위키에도 바토리가 피의 목욕을 했다! 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영문 위키 역시도 이 유명한 이야기가 믿을만한 근거가 없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Stories describing her vampire-like tendencies (most famously the tale that she bathed in the blood of virgins to retain her youth) were generally recorded years after her death, and are considered unreliable.) 그리고 바토리가 650명의 희생자를 냈다는 것도 어느 정도 과장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재한에 서기도 한 표적이 된 많은 이들이 귀족의 미망인이었던 점도 바토리의 악명이 단순 그녀의 엽기적인 살인 행위 뿐만이 아닌 어떤 정치적 역학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냐 라는 주장도 있으니 말이죠. 







세일럼에서 마녀로 기소된 이들은 화형에 처해졌다?


미국이 아직 영국의 식민지령이었을 때인 1692년부터 1693년 5월까지 매사추세츠 주의 항구되신 세일럼에서 일련의 심리 및 기소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재판은 마술에 걸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를 세일럼 마녀사냥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흑역사로 알려진 이 재판을 통해 약 20여명의 피고인이 처형되었습니다. 대부분 마녀사냥 혹은 마녀재판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화형에 처해지는 것을 생각하고 세일럼 마녀 사냥의 피해자들 역시 화형에 처해졌다고 믿어지지만, 실상은 그 누구도 화형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 20명중 여성이 14명이었고 20명 중 19명은 참수형 그리고 1명은 압살형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이 지난 10년 후에야 세일럼에서는 마녀 사냥이 불법으로 선언되었고 이전에 죽은 피해자들도 모두 사면을 받았습니다(죽은 뒤 사면 받으면 뭐하나)





조지 워싱턴 카버 땅콩 버터를 발명하다?


풍부하고 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땅콩 버터는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땅콩버터는 아즈텍 문화에서도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하지만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땅콩 버터와는 조금 다른 형태였습니다. 아즈텍 인들은 으깬 땅콩을 구워 페스트 형태로 만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맛있게 먹었지요. 현대의 땅콩 버터는 일반적으로 (관심없는 분들도 계시지만) 조지워싱턴 카버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는 실제로 콩과 식물 300가지 이상을 사용하여 땅콩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하기도 했습니다. 카버는 땅콩으로 면도크림을 만들기도 하고, 샴프 혹은 접차제 및 여러 용도로 사용 할 수 있다는 것을 홍보하기도 했습니다만 그가 땅콩 버터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실제 땅콩 버터의 발명은 길모어 에드슨, 존 하비 켈로크 박사와 암브로스 스트라우브 박사가 한 것이 정설 입니다. 길모어 에드슨 박사는 1884년 볶은 땉콩으로 만든 페이스트를 특허신청했고 또한 켈로그 시리얼로 유명한 존 하비 켈로그 박사는 1895년 땅콩으로 땅콩버터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특허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암브로스 스트라우브 박사는 땅콩 버터를 만드는 기계에 대한 특허를 낸 인물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기병은 창과 도끼로 독일 탱크에 맞섰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은 정식 선전포고 없이 폴란드를 기습적으로 침공했습니다. 당연히 폴라드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죠. 당시 폴란드 군대는 여전히 군대의 현대화를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유명한 폴란드 기병외에도 가지고 있던 무기를 가지고 독일군에 맞설 수 있었죠. 실제 폴란드 군대는 말에다 기관총과 대전차 소총을 달아서 싸웠습니다.  폴라드 기병 부대는 독일 보병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독일 군은 현대무기와 더불어 세이버와 창을 들고 있는 폴란드 기병에 놀랐습니다. 이로인해 한동안 폴란드는 전장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만, 독일의 기관총으로 무장한 장갑차가 전장에 참여하면서 그 기세가 꺾이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상자를 내었죠 전장을 방문한 종군기자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신과 말의 사체를 보며 폴란드 군인이 무모하게 창과 도끼만을 들고 독일 장갑차에 돌격했다 라는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사를 썼고 이로 인해 폴란드 기병은 마치 무모함의 대명사인냥 회자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독일의 프로파간다로 인해 독일군의 우월성과 군대 기술의 우월성을 더욱더 강조하기 위한 소재로 쓰여서 더욱더 왜곡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 것이 바로 폴란드 기병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아이언 메이든은 중세 기간 동안 고문도구로 쓰여졌다.?


철제 가시가 가득한 내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아이언 메이든은 중세의 고문장치로 쓰여진 것으로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아이엔 메이든은 사람이 충분히 들어가기에 충분한 철제 캐비닛으로 이루어져있고 그 안에는 철제 가시로 가득하죠. 하지만 이는 완전히 가상의 것 입니다. 아이언 메이든은 14세기 뉘렌 베르크시에서 유래한 발명품입니다. 빌레펠트 대학의 볼프강 쉴드 교수의 말에 따르면 아이언 메이든은 박물관의 유물조각을 모아서 만들어졌다고 하며 이것의 목표는 상업전시를 위한 훌륭한 발명품이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언 메이든에 관한 이야기는 19세기의 이야기들에서 찾아보기 시작할 수 있으면 19세기 이전에는 아이언 메이든이라고 불리는 이 장치가 고문을 위해 만들어졌거나 사용을 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습니다. 






모스크바와 워싱턴 간의 핫라인에 사용된 전화를 붉은 색의 전화였다?


1963년에 모스코바와 워싱턴간의 핫라인이 개설되어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간에 직접적인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핫라인은 미국 버지니아의 펜타곤과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을 연결합니다. 이 핫라인에 사용되는 전화기는 소위 빨간 전화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스크바와 워싱턴 핫라인의 상징이 된 붉은색 전화기는 순식간에 유명해져 수많은 영화와 TV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사실 핫라인은 절대 전화기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텔레타이프 장비를 통해 이루어졌고 시간이 좀더 지난 1986년엔 팩스기계로 전화되었으면 2008년에는 팩스 기계에서 안전한 컴퓨터 링크로 전화되었고 그 이후로는 E메일을 통한 메일 전송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아마도 전화사의 상술이 한 몫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듭니다.






재미있으셨나요? 사실 최근 세대면 모르는 이야기 모스크바, 워싱턴의 핫라인이나 별로 관심 없을 조지 워싱턴 카버의 땅콩잼 같은 이야기도 있지만 뱀파이어의 원형이 되는 바토리 이야기 그리고 폴란드 기병의 이야기는 꽤 알려져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과는 다른 것이 마치 진실인양 알려져있었죠. 이렇듯 진실을 교묘하게 가공하거나 아예 없는 사실을 진실인양 유포한 것이 수많은 시간을 지나며 공고하게 사실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꽤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도 진행 중이죠. (가짜 뉴스와 같은). 그렇기에 차분하게 앞뒤를 잘 따져보고 정보를 잘 취합하는 것이 중요 하고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 또한 중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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